춤추다가
늘 그렇듯이 춤을 췄다. 미친듯이 오늘 안 춘 사람이면 일단 추고 봤다. 근데 평소 원래 잘 알고 추던 사람을 잡았는데 목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 그래서 그동안 단련한 하체 위주의 패턴으로 한 곡을 이끌어갔다. 사실 뭐 큰 배려는 아니었고 그냥 담이 조금만 와도 얼마나 춤추기 불편한지 알아서, 목을 최대한 안 쓰게 하면서 춤을 췄던 것 같다. 감사히도 내 의도를 알아주셨는지 서서히 미소로 답해주셨다.
별일 없으면 한 주에 소셜 댄스 정말 많이 추는데, 아마 그만 둘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장면인 것 같다. 크게 테크니컬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컨디션을 체크해가면서 이렇게 그냥 간단히 추는 춤. 소소한 배려에 미소로 답하는 춤. 어쩌면 우리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항상 가르쳐 주실라고 했던 춤은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조금은 소셜댄스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 같았다. 부디 오래오래 이 마음가짐을 놓치지 말고, 앞에 있는 사람의 빛나는 눈 속 우주를 깊숙히 풍미하며 춤추자.
내 사람들 챙기기도 바빠
요즘 거의 사람들이 유행처럼 하는 말이다. 아마도 내 사람들도 챙기기 바빠서, 그 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뭔소리를 하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말인 것 같다.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이 말이 조금 마음이 아플까? 뭔가 사람 관계에 효율을 적용하겠다는 말인 것 같아서, 조금은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너무 눈치를 본다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도 엄청나게 눈치를 보기때문에, 이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참 많은 시행착오를 감내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기도 하다. 저 사람한테 인사를 하면 받아줄까 안 받아줄까 엄청 고민하다가 인사를 건넬 정도로 눈칫밥을 많이 먹어왔다.
눈치를 안 보려고 이런 저런 방법들을 많이 시도해보았는데, 최근에야 깨닫게 된 것은 의외로 내 현생에 해야할 것들을 잘 해내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만났을 때 눈치를 적게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나의 업무를 훌륭히 해내고, 또 이번주에 먹어야할 영양제들을 다 챙겨먹기 등등 뭔가 나는 잘 살고 있다(?)라는 마인드 셋팅을 갖추고 사람들을 만나면 확실히 눈칫밥을 덜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을 만나면 뭔가 더 행복했다고 해야하나, 내 삶이 내가 정해놓은 루틴대로 내 위주로 팡팡 잘 돌아가는데 거기에 다른 사람의 에너지까지 한 스푼 더하는 느낌이랄까? 이래서 사람들이 삶은 내 위주로 살아야한다고 했나보다.
아무튼 눈치를 좀 덜 보기 시작하면 내 사람 / 내 사람 아닌 사람을 가리는게 크게 의미가 없어진다. 오히려 그것보다 나의 삶, 내 시간의 행복의 강도와 빈도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현생을 열심히 살고 눈치를 보지 맙시다!
안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
좀 정신이 나태해지는 것 같으면 틀어놓는 유튜브 < 장사의신 > 쭉 틀어놓고 일하면 계속 혼나면서 일할 수 있다. 그래서 별 일 없으면 잘 보는 유튜브이기도 한데, 창동 꼼장어 편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잘되는 사람들도 이럴 순 있어도, 잘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이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 이게 잘 못 되었다 지적을 받으면, 그 지적에 대한 이유와 핑계가 항상 존재한다 ]
[ 이게 잘 못 되었다 지적을 받으면, 그 지적에 대한 이유와 핑계가 항상 존재한다 ]
나도 옛날에 이랬었고, 순간의 당황스러움과 쪽팔림 등 등을 모면하려고 보이는 태도였던 것 같다. 근데 저게 어느 순간 내가 어떻게든 인지하지 못하고, 또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반복적으로 이게 잘 못되었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저 변명과 핑계들이 나를 삼키게 된다. 특히 내 주변 또래들도 이걸로 정말 인생을 돌아가는 것을 봤는데, 아주 서서히 인생을 좀먹는 습관이라 생각한다.
[ 나는 이렇게 많이 생각하고 노력했지만, 상황과 운이 안 따라줬어 / 내가 이만큼이나 했는 결과가 이렇게 된거니 나의 잘못은 아니야 ]
+ 다음에 더 잘하면 될 거야
됨됨이
또래들이 결혼 시즌이라서 그런지 참 많이 청첩장이 온다. 내가 꼰대인 것인지 최소한 만나서 청첩장을 주려는 사람까지는 그 의도가 느껴져서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전하는 편이다. 아무리 관계가 소홀했더라도 만나서 주려고하면 마음이 와르르 풀리는 편이다. 사정상 그때 시간이 안될 것 같으면, 밥도 안 얻어먹고 모바일로 청첩장을 받고 봉투만 한다.
근데 가끔 정말 가끔.... 대뜸 와서 모바일부터 띡 보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바쁘고 원래 저런 성격인 걸 알아서 그려러니 하긴 하지만, 그보다 견디기 힘든건 그때부터 급격히 자기가 얼마나 됨됨이가 잘 되어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근데 정말 보통 됨됨이 대한 평가는 자기가 잘 보여야 할 때보다, 정말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일 때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은 내가 경사도 아니고 조사를 치뤄야할 때 쳐다라도 볼까?
나도 뭔가 내가 내뱉은 말들을 다 지켜가며 살기는 정말 어렵다고 느낀다. 근데 적어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게 인간의 됨됨이,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게 아닐까 싶다.
+ 물론 이 모든 소리는 내가 아직 결혼을 안해봤기에 함부로 하는 말.
무던해보이는 것
극 예민 까탈 성격이라 이러다간 주변에 풀 한포기 안 남을 것 같아, 인생의 미덕을 '안정' 이라고 설정 할만큼 많이 예민하다. 많이 안정된 상태에서는 그나마 사회생활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예민함만 가지고 살아서, 그래도 상대방과 나 모두 덜 괴롭히고 살아갈 수 있는 상태다.
근데 언젠가부터 나는 왜 무던해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결국 무던의 결과는 선(line) 설정 실패로 돌아온다. 당연히 내가 무던해보이려고 노력을 하면 무던한 사람인 줄 알고 선을 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면 나는 온갖 나쁜 말을 더해 상대방을 선도 못지키는 사람을 만드는데, 애초에 내가 무던해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결국 무던해보이려고 하는 것은 나를 위함보단 남들에게 보이는 나를 좀 더 호감처럼 보이게 하려고 하는 것일텐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호감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어렵겠지만 예민하면 예민한데로, 또 썅놈이면 썅놈답게 그냥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야겠다. 예민해보였는데 차라리 무던한게 났지, 무던해보이다가 예민한 걸 알게되면 100이면 100 다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예의는 갖추되 억지로 호감을 사려고 하는 행동들은 그만.
종교인 2명
25년 11월호에도 적어냈듯이 나는 참 교회를 오래다녔다. 이런 저런 이유로 더 이상 이 종교 커뮤니티에는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더 이상 다니진 않지만, 가끔 들려오는 참 된 종교인들 이야기들은 정말 달갑다. 종교 커뮤니티에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모두다 수련중인거라 미숙할 수 밖에 없다. 그게 당회에서 지정한 종교인일지라도 미숙할 수 밖에 없다. 10년 가까이 교회를 다니면서 참 여럿 종교인들을 모셨었는데, 그중에 딱 2명만 기억에 남는다.
한 분은 불교 집안에서 자라다가 좋은 대학교를 가고 대기업까지 갔다가, 종교에 심취해 신학대학원으로 진로를 결정한 사람이었다. 그냥 단순히 심취한 정도가 아니라, 결정을 내리기까지 기도원에 2~3달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족, 학벌까지 다 버려가며 종교인의 길을 선택하신 것이었다. 보통 저런 기도원들은 오히려 사이비의 느낌이 더 강해서, 기존 종교인들한테도 좀 이상한데(?) 라는 느낌을 주는 곳인데 이 분만은 그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간 내가 만났던 종교인들중에서 가장 확신이 강한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이 분을 만나기전까지 좀 뭉뚱그려 신앙생활을 했다면, 뭔가 이때부터 좀 더 진중하게 교리에 빠지려 노력했던 것 같다. 다들 청년부 목사로 취임하면 잘못된 걸 바꾸기 급급했는데, 이 분만이 그냥 1년 정도는 여러분과 함께 계절을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던 게 기억이난다. 대기업 다니던 짬바일 수도 있겠지만, 여러모로 참 본인 종교에 정직하고 지혜로웠던 분.
두번째 분은 꽤나 형편이 기우는 종교인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군대가기 직전에 노가다를 다니는 나와 내 친구를 불러서 라면을 대접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되게 작은 원룸이었는데, 거기에 작은 베란다가 있었다. 그냥 세탁기와 빨랫대도 못들어갈만큼 정말 그냥 창고같은 곳이었는데, 목사님은 항상 거기서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낭만을 즐겼다. 나도 이때는 돈이 없어서 노가다를 다닐 때라, 정말 돈없는게 지긋지긋 했고 한편으로는 목사님이 저리 사는게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목사님의 페이스북을 들여다봤는데, 이제는 다행히도 큰 교회에 부르심을 받아서 물질적으로는 거의 문제는 없어보였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사님은 70~80만원 벌때 우리에게 라면을 대접했던 것처럼, 여전히 늘어난 자기 벌이 안에서 더 풍족히 무언가를 나누고 있었다. 종교 교리를 떠나서 모든 종교인이 좀 이런 모습을 닮았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돈 때문에 자기의 삶 70~80%를 사용하는 시대에, 그저 자기가 가진 것들을 가능한 나눠주는 삶. 나는 70~80대에도 불가능할 것 같다. 나눔은 어쩌면 없는 형편에서부터 꾸준히 훈련이 되어야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렵겠지만 작은 것부터 나누며 살아보자! 당근이라도!
F는 다 사라졌다
심한 F로 수십년을 살아왔다. 사실 나는 내가 F인게 그리 자랑스럽진 않다. 때론 F 성향 때문에 사람을 너무 많이 잃어 보기도 했고, 나보다는 타인에게 받는 호감이 내 삶의 더 높은 우선순위일 때도 많았다. 요즘은 그래서 일부러 학습된 T일려고 수 없이 노력한다. ( 사실 요즘 사회를 살아내려면 적당한 T력은 무조건 필요하다. ) 하지만 유년시절부터 형성된 그 어리고 나약한 마음은 중요한 순간에 FFFFFF력을 티내며 나의 온전하지 못한 심리상태를 흔들어 놓았다.
거의 30년 넘게 F로 살아온 사람으로써, 내 생각에 요즘 진또배기 F들은 모두 다 사라졌다. 이미 그런 F들은 모두 다 집 밖에 잘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을 2시간만 만나도 너무나도 외롭기 때문에 버틸 수가 없다. 대화 두 마디만 나눠도 이 사람이 절대 내가 원하는 수준의 공감과 소통에서 오는 만족감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그냥 제미나이와 대화를 하던지 사람들과의 소통을 그냥 포기해버린다.
내가 진또배기 F들을 구분하는 기준을 하나 세워둔게 있는데 진짜 F 성향이 심한 사람은 저 사람이 나를 호구로 보고 사기를 치다가 걸려도, 우선 너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던 이유와 상황이 있었겠지라고 말을 시작한다. 굳이 따지자면 과공감장애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F들은 대부분 이랬다. 요즘 세상에 사회생활이 제일 힘든 MBTI들, F는 진실로 멸종위기다.
+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 이렇게 해, 이렇게 해보자 > 라고 입 밖으로 내밷고 있으면 무조건 T 성향입니다.
1월 요약
1) 소셜댄스는 어려워
2) 본업을 잘해야!
3) 이건 이래서 망했어
4) 됨됨이
5) 무던해보이는 것의 단점
6) 종교인
7) 멸종위기 F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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